Mr. 헤겔에 대한 생물학적 반박
 
생물은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 물질이다. 그렇지만 물질의 집합체는 결코 생물이 되지 못한다.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로 생존하기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자신을 남긴다라는 의미와 같다. 그 의미는 다시 자기 자신의 복제와 통한다. 단세포동물을 말하지 않고도 박테리아는 그저 잘 포장된 복제의 화신이다. 오직 복제로 자신의 생존을 강하게 어필한다. 이후 수많은 종이 탄생하고 진화하고 퇴화되었지만, 결국 생물의 목적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다시 살펴보면 자신이 가진 정보를 좀 더 많은 후대에게 전한다라는 것이다.
 
이 정보는 스스로를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이 정보를 전하기 위해 총 개체수가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며, 이 개체수 확보를 위해 생물은 진화의 물결에 뛰어 들었다. 최초의 원시세포가 생존을 위해 최초의 박테리아를 삼켰다. 이것이 최초의 세포다.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는 박테리아다. 결국 박테리아를 삼킨 세포는 미토콘드리아의 복제능력과 원시세포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 대사율 등으로 인해 생존에 더 유리했졌다.
 
둘째는 번성하기다. 생존하기가 전체 개체 수의 증가로 인해 이루어졌다면, 번성하기는 좀 더 구체적이다. 전체 개체 중에서 자신 스스로를 개별화하는 정보를 전해야한다. 전체는 비슷하지만 스스로는 좀 더 다르다. 이 다름을 전해야한다. 남들보다 5%로 더 번식능력이 강하다. 이 정보가 진화에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5% 더 번식능력이 강한 개체는 경우 다른 비슷한 개체들 속에 조금씩 점유율을 높여 간다. 전체가 100인 개체가 동일하게 100을 생산한다. 그중 5%로 생식 기간에 번식능력이 강하지만 생식능력이 없는 노년에 5% 더 빨리 죽는 개체와 5% 번식능력은 약하지만 5% 더 오래 사는 개체가 절반씩 있는 개체다. 이 개체는 꾸준히 5%씩 전자의 개체가 번식율을 높여가 결국은 후자는 멸종하고 전자만 살아 남는다.
 
이는 진화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한 개체가 스스로 오래 사는 것은 아무런 목적이 없다. 한 개체가 생식이 가능한 순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생식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개체는 번성하게 된다. 즉, 자신과 동일한 개체를 좀더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생존과 번성을 동시에 만족한다.
 
생물에게서 획기적인 변화라 할 수 있는 유전자의 변형은 단 두가지 경우에서만 일어난다. 첫째는 돌연변이이고 둘째는 우리가 수정이라고 부르는 난자와 정자, 암술과 수술의 결합이다. 돌연변이는 유전자 전체에서 일부의 유전자가 변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획득형질이 아니므로 유전된다. 둘째는 좀 더 과학적이다. 수놈의 반과 암놈의 반이 섞여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낸다. 이 새로운 하나의 반은 다시 다른 반을 만나 또 다른 하나를 만들어 내다. 이것을 통해 과거로 부터 전해져 온 정보의 저장과 적응과 선택에서 유리한 형질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적인 방식을 일끌어 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생물은 생존과 번성을 통해 스스로의 정보를 전달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일까? 단순히 스스로 존재하는 증명? 단순히 스스로 생존과 번성할 수 있다는 증명? 어떠한 정보를 전하려고 지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진화의 틀 속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킨 것일까? 최초의 정보는 어떤 것이며, 그것인 현재 확실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해지고 있기는 한 것인가? 지구 상의 모든 생물체는 최초의 정보를 지구 전체에 확실히 인식시킨 셈일까?
 
얼핏 보기에 지구의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는 생물체의 증가에 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오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지금의 선택과 진화의 모습이 다양성으로 표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다양성은 오직 개체 수의 증가와 어떤 생물체의 증가를 제어하는 것으로부터 좀 더 확실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한 개체가 오래 산다 생물체의 증가를 제어, 억제하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공격은 결국 한 개체를 전멸시킨다. 공격으로부터 면역성이 생긴다는 것은 결국 개체에서 생존에 유리한 면역적인 정보를 가진 개체가 다시 좀더 이후의 개체 수에서 끊임없는 증가를 이루어 극복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정보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정보는 오직 생존과 번성 이 두가지 뿐일 것인가?
 
생명이 흘러가는 방향에 관여하는 것은 오로지 바람일 뿐일 것이다. 헤겔의 영향으로 파고든 목적론이 생명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생명의 흐름에 합목적성이 관여되어서는 안된다. 생명의 시간은 인간의 관점일 뿐이며, 생명의 진화도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시원세포에서 발전된 생명체의 다양성이 어떠한 규칙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흐름은 규칙도 목적도 없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갈 뿐이다.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근원을 파고들어 우연의 산물로 진화론을 공격하지만, 근원을 파고들면 진화론이 더욱 우세해질 뿐이다. 세포가 발견되고 염색체가 발견되고 유전자가 발견되고 DNA와 RNA가 발견되면서 지구상의 60억의 인간 종의 임의의 두명을 선택해 유전적인 비교를 해보았을 때, 유색의 상관없이 그 유전자의 차이는 99.9%를 넘지 않는다. 유색과 미추와 장단이 인간에게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인간 상호간은 서로 다른 성일 경우 완벽하게 수정이 이루어지는 유전적 근친간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에서 분화되었다고 알려지는 침팬지의 경우는 인간과  99.8%의 유전적 정보가 동일하다. 불과 0.1%차이 이지만 이 차이로 인해 인간과 침팬지 간의 수정은 불가능해진다. 유전적으로 다른 종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서 유전적 정보가 멀다고 여겨지는 박테리아들도 사실 30% 가량은 비슷하다. 이렇듯 생명의 전체 시간으로 보면 인간은 별 의미가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이 최초의 생명은 어디서 왔느냐? 그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진화론자들은 변명에 충실하기보다 또 다시 근원에의 연구를 할 뿐이다.
 
사실 70년대 이후 최초의 생명은 이미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입증되었다. 물론 이 자연발생적이라는 단어가 우연을 뜻하는지 선택을 뜻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된다. 아직까지 인간의 이성이 그것을 충분히 통찰할 수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물리학에서 시간여행이 언제쯤 가능해?라는 물음과 비슷한 면이 있다. 과학의 이론에서는 가능한 듯이 보이지만 현재의 시간, 좀더 나아가 현재 세대의 시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생길 원인은 두 가지다. 자연발생적인 것과 우주 유입설. 자연발생적인 것은 1억년이고 10억년이고 (지구탄생에서 약 10억년 후에 최초의 생물이 탄생했다는 견해가 많다.) 그 수많은 시간동안 사실 쉽게 1억년이고 10억년인 것이지 그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처음에도 이야기 했다시피 생명은 어떤 목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자연발생의 여지는 충분한 것이다. 우주유입설은 또다른 기회를 가져온다. 얼마전 지나간 밥 헤일 혜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가기만 했는데도 밥-헤일 혜성에 포함된 얼음입자들이나 암석에서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아미노산 등이 물질이 발견되었다. 과거의 지구에는 수많은 운석과 소행성과 충돌 했으므로 그 속에 포함된 물질이 얼마든지 지구로 유입될 수 있다.
 
그러다면 또 따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 물질은 또 어디서 창조된 것이냐? 사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생명의 종자는 단 4가지 물질이다. 즉 생명은 그저 물질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 이라고 불리는 4가지 물질이다. 더 근원으로 파고들면 이러한 4가지 물질도 탄소 조금, 수소 조금, 질소 조금, 산소 조금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생명이 탄생이 그렇게 누군가의 의지로 아주 복잡하고 산술적인 수식으로 탄생되었다면 그것이 나아가는 방향은 그 누군가의 의지에 대한 합목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생물은 일찍히 멸종하기도 하고 어느 생물은 옛날의 모습과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또 어느 생물은 어느 시기에 멋지게 새롭게 나타나기도 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단도직입적으로 어느 순간에 공룡의 알에서 새가 튀어 나왔다.라는 이야기에 멋지게 들어 맞는다. 유전자 정보는 이미 수정할 당시에 변이되고 재조합되기 때문에 알이 된 순간에는 이미 결정되어 버린것이다. 따라서 겉모습은 공룡알일지는 몰라도 알을 깨고 나왔을 경우에는 이미 새인 것이다.
 
달걀과 닭은 이미 동질의 종이다. 어미의 유전 정보를 획득하고 있지만, 아주 적절하게 반씩 얻어온 조상들의 유전정보와 충분히 변이되고 변이된 유전정보는 새가 공룡이 아니라 새가 되어버리게 하게 되었다.
 
(요약)
 
우연도 없고 창조도 없다. 그저 바람이 흐르는대로 흘러가는 것 뿐이다.

[출처] 화요일|작성자 귀신

Posted by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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